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정문석 교수 연구팀이 이화여자대학교 김동욱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비정질 텔루륨 삼산화물(a-TeO₃)’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상압 상태에서 자외선 오존 처리(UV-O3)를 활용한 새로운 상변화 공정을 통해 고성능 P-채널 트랜지스터 구현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상보적 금속 산화물 반도체(CMOS) 기술은 저전력·고성능 전자기기의 핵심이지만, 그간 P-채널 트랜지스터의 성능 확보는 큰 난제로 여겨져 왔다. N-채널 트랜지스터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 반면, P-채널 트랜지스터는 낮은 이동도와 불충분한 스위칭 특성으로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비정질 산화물 반도체 분야에서는 N-채널 소재가 전자 이동도 10 cm²V⁻¹s⁻¹ 이상을 달성했으나, P-형 소재는 대부분 정공 이동도가 1 cm²V⁻¹s⁻¹에 못 미쳐 실질적인 응용이 제한돼 왔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슬롯 사이트팀은 일반적인 열처리 산화 공정이 아닌 상압 조건에서 자외선 오존(UV-O₃) 처리를 통해, 2차원 텔루륨(2D-Te)을 비정질 텔루륨 삼산화물(a-TeO₃)로 변환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고해상도 투과전자현미경(HRTEM)과 라만 분광법을 통해 결정질 2D-Te가 비정질 a-TeO₃로 완전히 상전이되는 과정을 관찰했으며, X선 광전자 분광법(XPS)을 통해 Te⁶⁺ 산화 상태를 확인함으로써 비정질 텔루륨 삼산화물 형성을 증명했다.
그 결과 비정질 텔루륨 삼산화물 기반 트랜지스터는 금속-반도체 접합부에서 극히 낮은 쇼트키 장벽 높이(10 meV)를 기록했으며, 이는 우수한 접촉 저항(626.81 Ω·μm)으로 이어졌다. 또한 높은 정공 이동도(238.6 cm²V⁻¹s⁻¹)와 우수한 온/오프 비율(0.81 × 10⁵)을 동시에 달성해, 기존 P-채널 트랜지스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특히 이 같은 성능은 단순한 SiO₂ 유전체 층(90 nm)을 사용한 조건에서도 구현된 것으로, 향후 고유전율 게이트 절연체나 포논 산란 저감 기술을 적용할 경우 더욱 높은 성능이 기대된다.
비정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정공 이동도를 구현한 이번 소재는, 비정질 산화물 반도체의 성능 한계를 재정의한 사례로 평가된다. 슬롯 사이트팀은 100 K부터 370 K까지 다양한 온도와 전기장 조건에서 전기적 특성을 정밀 분석해, 해당 소재가 실제 응용 환경에서도 우수한 안정성과 신뢰성을 보인다는 점을 입증했다.
정문석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새로운 P-채널 반도체 소재를 개발한 것을 넘어, 상 공학(phase engineering)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 개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향후 저전력·고성능 CMOS 회로 구현에 중요한 기여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혁신연구센터사업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한양대 물리학과 방승호 박사(공동 제1저자), 이채원 박사과정생(공동 제1저자), 정문석 교수 (교신저자), 이화여대 물리학과 김동욱 교수(교신저자)가 참여했다. 연구 성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권위 학술지 『Advanced Materials』 (IF: 26.8)에 “High Performance P‐Channel Transistor Based on Amorphous Tellurium Trioxide”라는 제목으로 6월 16일 온라인 게재됐다.